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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에 관한 짧은 인상 몇 가지
    삶은다껌 2019. 7. 25. 08:20

    중국 사람들이 혹시 이 글을 본다면 기분나쁠 것이다. 제목에서 짧다는 말은 글의 길이 보다는 내 생각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짧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철없는 어릴 적, 미국과 미국인을 동경해본 적은 있으나, 중국과 중국인을 동경해본 적은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중국=뗏놈 내지 오랑캐 정도의 등식이 아무런 사전 경험없이 그대로 나의 뇌리에 각인된 탓이 크다. 어쨌거나 일본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오랜 세월에 걸쳐 못살게 군 (그리고 굴고 있는 -_-;) 당사자이기도 하니까.

    그러다가 중국을 처음으로 약간은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첫 계기가 컴퓨터 오락으로 만들어진 삼국지다. 이문열의 삼국지를 처음 다 읽었을 때만 해도 '이게 도대체 무슨 씨나락 까먹는 엄청 긴 이야긴가' .. 싶었다.

    지금도 명성이 자자한 코에이 삼국지. 아마 삼국지 2탄이었을 거다. 도스 환경에서 돌아가는 90년대 초반의 히트작. 여러 날밤을 지샜다. 비록 가상 세계에서의 장난질이지만, '정복'이라는 행위 자체에 푹 빠졌던 것이다.

    그래서 게임을 제대로 이해해보기 위해 이문열의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 엉뚱하게(?) 빠져들게 된 인물이 조자룡. 교과서적이고 다소 가식적 도덕을 내세우는 유비는 원래 좋아하지 않았었고, 관우는 너무 신격에 가까워 왠지 거리감이 있었고, 장비는 애초부터 내 타입이 아니고, 마초도, 조조도 그 누구도 그렇게 생생하게 와닿지 않았지만 조자룡만은 이상하게 영웅으로 다가왔다. 점점 더 오락에 빠져들고 점점 더 소설 삼국지에도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중국 무협지에 잠깐 빠졌고, 내친 김에 중국의 역사 관련 책들도 꽤나 읽었다. 손자병법이니, 초한지니 죄다 삼국지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던 시절에 읽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중국에 너무너무 가고 싶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동경이라기 보다는 경탄의 대상으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게 그 말인가?...)

    마침내 기회가 왔다. 1994년. 첫 해외 출장지가 중국이었다. 더구나 오나라의 수도 건업이었던 남경. 바다 건너라고는 제주도 졸업여행이 전부였던 내게 첫 해외 여행이라는 설레임까지 얹어져서 중국은 그렇게 좋은 추억으로 내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순박했다. 양자강 하구에 자리한 남경에서 삼국지 영웅들의 숨결을 한번 느껴보려 애썼다. (참고로, 이문열 삼국지 초반에 삼국지 원문의 시조 중 장강을 긴 강으로 해석했는데 이건 오류다. 장강은 양자강의 별칭이다. 남경 가서 중국 교수님들 설명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북한 아니 공식적으로는 북조선인민공화국 여권 소지자를 만나기도 했고, 한국전에 소년병으로 참전했던 중국 교수님을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진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쓰고 보니 출장이 아니라 놀고 오기만 한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은 흐른다. 순박함과 대륙과 영웅호걸의 이미지로 다가왔던 중국은 어느새 경제대국이면서 동시에 약간은 쫌탱이성 국민성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질투가 강한 사람들. 머리를 잘 감지 않는 사람들. 가짜 천국 등등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자꾸 쌓인다. 최근에 와서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잦아진다.

     

    KTX를 탔는데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있는 칸에 내 자리가 있었다. 정말이지, 시끄러워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웬 목소리들이 그리도 큰지. 단체 안내원에게 가서 조용히 좀 해달라 부탁했지만, 그 효과의 지속 시간은 약 5분이나 될까? 두번 항의해보고는 그냥 포기했다.

    이런 저런 조우들을 통해, 중국 사람은 시끄럽다는 선입견도 내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해외를 돌아다니다가 한국사람이냐고 누군가 내게 물어보면 반갑다. 오호~ 이제는 한국인 고유의 외모를 알아볼 정도로 우리의 인지도가 높아졌구나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누군가 일본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그닥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다만, 내가 그리 좀 얍실하게 보이나 갸우뚱해본다.

    그런데 중국 사람이냐고 질문받으면 기분이 확 나빠진다. (이 대목에서 중국 사람들에게 미안치만 주관을 쓰는 것이니 할 수 없다.) 얼른 내 외모를 돌이켜본다. 혹시 머리에 새집을 지었는지, 복장이 완전 불량인지, 내가 좀 시끄럽게 굴었나 등등.

    나는 웬만해서는 충동 구매를 잘 하지 않는데 공구 종류만 보면 이상하게 여자들이 다이아몬드보고 침 삼키는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각종 공구가 참 많다.^^ (이런 것이 팔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레더맨이나 스위스 군용칼 빅토리녹스로 대표되는 다기능 공구에 특히 군침을 잘 흘리는데 사실 결혼하고 아이 기르면서 충동 구매는 무척 자제하려 애쓴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어느 스포츠 용품 점에서 6개 다기능 공구를 말도 되지 않는 총 2만여원에 파는 것을 보고 어찌 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내는 옆에서 초등학생을 바라보듯이 날 봤다. 저리도 좋을까..--; 그런 눈길로.

    나는 너무 신이 났다. 박스를 뜯으면서 새삼 보니 메이드 인 차이나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위력(?)을 거의 겪어보지 않았으니. 다기능 공구를 이렇게 싼 가격에 샀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좋았을 뿐다. 이걸 쓰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세들어 살던 집에 우풍이 너무 심했다. 귀뚜라미가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정도를 넘어 좀 과장하자면 쥐도 들락거릴 듯한 그런 틈들이 자꾸 발견되었다. 나는 거품 플라스틱과 그 중국제 다용도 공구를 꺼내 들었다. 갈고 닦았던 솜씨를 발휘할 때다.

    보이는 틈새마다 플라스틱 거품(발포 우레탄인가?)을 뿌렸고, 그게 굳기를 기다린 후 다양도 공구의 칼을 뽑았다.

     

    그런데 ... !!


    나는 분명히 시멘트를 자른 것이 아니라 거품 플라스틱으로 대략 모양을 만들고 이걸 틈새 모양에 맞게 자른 것 밖에 없다. 스폰지보다 조금 더 단단한 물건을 자른 것이다. 이런... 공구의 칼날이 다 없어져 버렸다. 거의 버터칼 수준으로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었다. 발포 플라스틱이 너무 강한 것이겠지.

    조금 있다가 나무에 나사를 박을 차례가 되었다. 나사 머리가 뭉게지는 경험은 종종 했어도 드라이버 자체가 비틀어지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_-;;

    쇠로 만들어진 공구라기 보다 마치 단단한 껌처럼 느껴지던 그 황당함. 

    결국 2만원 정도 주고 산 총 6개 다용도 공구 중에 단 하나를 건질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몽키 스패너. 그런데 따지고 보면 몽키 스패너는 2,3천원이면 살 수 있다.--;

    중국사람들은 억울해할지(?) 몰라도 그 뒤로 '아, 이거 품질 개판이다.' 싶으면 영락없이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그래서 내게 생긴 버릇은 아무리 싸더라도 메이드 인 차이나로 확인되면 웬만해서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중국은 내게 찍힌 것이다.

    이런 비슷한 경험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진다. 회사 상사와 프랑스 파리의 밤구경을 나섰다가 출출해서 한국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종업원이 죄다 중국사람이다. 조금 이상했다. 인건비가 싸서 그런가.. 정도로 생각하며 이것저것 시켰다. 불고기가 나오고 소주가 나왔다. 소주는 한국 소주되, 불고기는 한국 불고기가 아니라 국적 불명의 양념을 뒤집어 쓴 고기였다. 그렇게 이상한 맛이 나는 불고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이어서 나온 육개장도 이상했고, 그러고 보니 김치며 여러 밑반찬의 맛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종업원을 불러서 물었다. 여기 사장님 한국사람이냐고. 맞댄다. 회사 상사는 좀 까다롭다. 그는 사장 좀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 자리에 없댄다. 그럼 전화라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멀리 외국에 갔기 때문에 전화는 어렵댄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한류 붐을 타고 중국산 짝퉁 한국식당이 파리 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일본 식당은 이런 식으로 점령당한지 오래 되었단다.

    여러 사업을 하는 어느 해외교포분의 얘기가 새삼 떠올랐다. "어느 상권에 중국 사람들 뜨면 말이죠. 그 때는 그냥 접어야 되요. 인해전술이라니까. 못 당해요."

     

    서울 시청 근처에 내가 애용하던 치맥집이 있었는데 내가 거기서 좋아한 안주는 사실 닭이 아니라 낙조탕으로 이름 붙여진 낙지+조개탕이었다. 어느날, 매우 중요한 (나와 술 기호가 비슷한) 손님을 모시고 그 집에 갔다. 낙조탕과 소주를 시켰는데.. 낙지가 아니라 오징어 조개탕이 나왔다. 나는 바로 따졌다. 아니, 낙조탕에 웬 오징어를?

    중국식 억양을 쓰는 종업원은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그거, 낙지 맞슴다."

    "아니, 내가 낙지하고 오징어도 구분 못하겠습니까? 이거 오징어잖아요!"

    "낙지 맞슴다."

    급기야 주방 아주머니가 나오고, 아주머니도 오징어를 낙지라고 우기다가 결국엔 인정했다. 실수(?)로 오징어를 넣었다고. 다시 만들어 오겠다고. 나는 뭔가 눈치를 챘다. 사장님 좀 만날 수 있을까요? 했더니 사장님 지금 안 계시단다. 아까 말한 프랑스 파리의 짝퉁 한국 식당 장면이 반복되었다.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그 길목에서 오래 장사하고 유명했던 이 집은 중국 자본에 팔렸댄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업력이라 간판에 적혀 있던 그 맛있던 낙조탕 집은 얼마 안 가 문을 닫았다. 오징어를 낙지로 우기는 집에 누가 가겠는가?

    중국 입장에서는 좋은 사업 특질일지 몰라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영 아니다. 공산품 품질도 그렇고, 식당의 음식 맛도 그렇고.

    중국은 여러모로 큰 나라 즉, 대국이다. 그런데 역사 또는 역사 소설에 등장하는 그런 류의 마음으로서의 대국기질들은 도대체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1994년에 봤던 그 순박함이 진짜 중국의 모습인지 아니면, 지금의 짝퉁 전문과 질투가 중국의 모습인지 궁금하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도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인 고유의 모습들이 계속 (좋든 나쁘든) 바뀌어 가듯이 그들도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적응진화 중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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