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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동건이나 원빈처럼 생겼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는 연예인들이 '딴따라'라는 다소 천시받는 투로 불리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선망 직업 최고위군에 꼽힐 정도로 각광받는 직업이 되었다. 노래를 엄청 잘 하는 가수,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에는 천부적이라 할만한 소질을 가진 코메디언 등, 타고난 끼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높은 자리에 이른 연예인들도 많지만 게중에는 타고난 외모 하나 만으로 이미 경쟁자들과는 출발선이 다른 지점에 선 아주 부러운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들도 외모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얼굴과 몸을 가꾼다는 것이 사실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니까.
뱃살을 빼기 위해, 또는 근육을 좀 붙여보기 위해 운동실에 등록해본 사람들이라면 내가 회비를 내고 얼마나 자주 갔던가에 대한 회한을 대부분 느낄 것이다. 나도 그렇고.
내가 말하고픈 외모는 타고난 잘생김이나, 몸매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똑한 콧날과 동그란 눈과 멋진 눈썹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표정과 성격과 행동이다. 이 모든 것은 외모로 드러난다.
여러해 전, 미국 출장 중 어느 도로를 운전하던 중이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길이 막히고 있었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 20대 초중반 쯤으로 보이는 흑인 청년이 목발을 짚고 도로 가운데 서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먼 발치에서는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다리 좀 불편해보이는 거 말고는 멀쩡해보이는 친구가 왜 일을 하지 않고 길에서 구걸을?
차가 점점 다가서면서 보니 청년은 오른쪽 무릎 아래가 없었고 몸도 무척 가녀리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청년의 표정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말 해맑았다. 미국 남서부의 땡볕을 모자도 없이 받아내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지나가는 모든 차에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 정말 멋진 날씹니다.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 안녕하세요. 안전 운전 하세요.
지나가는 거의 모든 차량들이 창문을 열고 청년에게 돈을 조금씩 주었다. 청년은 그 맑고 고운 표정과 목소리로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나도 주머니를 뒤져봤다. 25센트 동전과 5달러 지폐. 잠시 고민했다. 1달러가 나왔으면 주저하지 않았을텐데. 저 밝은 표정에 25센트를 주기는 그렇고, 5달러를 주자니 나도 빠듯한 신세고.
마침내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찰라의 고민을 거쳐 5달러를 주었고, 청년은 역시나 맑고 밝고 고운 웃음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내 마음에서는 동정이 아니라 뭐랄까 공감과 격려에 가까운 감정이 솟아났다. 영어가 익숙치 않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생각과 표정으로 내 의사를 전달했다. 당신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길.
소위 말하는 단순한 외모와 표정 하나로는 그 사람을 한 번에 파악하기 힘들다. 뭐, 나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그래도 몸매가 날씬하고 일단 얼굴이 되는 사람에게 눈길이 우선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상대와 나의 대화가 시작되면 서서히 상대의 진짜 외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뭔가 꼬인 듯한 성격, 쉽게 말할 것도 빙빙 돌리는 말투, 시선을 회피하는 버릇, 웃음이라고는 싹 말라버린 감정 등등은 서서히 둘 사이의 간격을 멀어지게 한다. 절대 좁히지 못한다.
반대로, 밝은 얼굴, 상대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말하는 어법, 당당하면서도 배려 있고 겸손한 행동과 시선,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웃음을 찾아내는 순발력과 공감력 등은 둘 사이의 간격을 차츰 차츰 좁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노총각으로 지내던 선배가 어느날 외모가 엄청 아름답고 소위 집안도 빵빵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어차피 잘 나가는 집안끼리의 맞선이었던지라 몇차례 만남이 오가고는 서서히 결혼 얘기도 시작되었다.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그저 성격이 좋고, 주머니 얇은 우리 후배들에게 술 사주기를 좋아했던 노총각 선배는 곧 결혼할 것 같다는 희소식을 술자리에서 전했고, 우리로서는 든든한 지갑을 가진 선배가 우리로부터 조만간 멀어지겠구나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선배는 우리에게 또 술을 사며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혼 날짜를 잡기 직전까지 갔던 관계를 끝냈노라고. 우리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 우리 둘이서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갔지.
- 웨이터가 서빙을 하다가 물을 조금 쏟았어. 그런데 물이 그녀 옷에 조금 튀었어. 뭐 쥬스도 아니고 물인데 그냥 마르면 끝이잖아?
- 그런데 그 때 웨이터를 보던 그녀 눈빛과 그에게 쏘아붙이는 말투를 보고 오만정 다 떨어졌다.
- 그건, 똑같은 사람에게 보이는 행동이 아니었어. 너무 실망했지. 그래서 깨끗이 끝냈다.
우리는 돌아온 선배가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선배의 단호함이 좀 무섭기도 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기가 가진 돈만큼이나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봤고, 아주 가난하면서 늘 침울한 표정으로 사는 사람도 봤다. 반대로, 돈은 썩어 나갈만큼 많으면서 표정과 마음씨는 진시황 시대 강제 노역에 끌려나간 노예같은 사람도 봤고, 걱정될 정도로 불안정한 수입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굴과 행동은 빌 게이츠가 부러워할 정도로 여유있고 밝은 사람도 봤다.
돈이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좋고, 얼굴이란 지나가다 다들 한번 다시 돌아볼 정도로 잘 생기거나 예쁜 것이 훨씬 좋다. 당연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얼굴에 드러나는 마음이고, 온 몸이 보여주는 단정함이다.
마음이 썩어 있으면 최고급 명품으로 도배를 해놔도 그 얼굴에서는 얼마 안 가 삶의 의미를 놓치고 방황하거나 무의미한 저항을 하는 안타까움과 미움이 드러난다. 마음이 풍요로우면 낡고 빛바랜 옷을 입고 있어도 그로부터는 뭔가 가까이하고 싶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밝음이 느껴진다.
외계인을 만난 적은 없으므로 딴 동네는 나로서야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 사회에서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다.
마음은 얼굴로 드러나고 행동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외모는 경쟁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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