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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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만든얘기 2019. 12. 23. 15:18
파릇파릇하다는 신입생 소리를 듣던 때가 말그대로 어제 같은데, 어느새 나는 늙은 예비역 복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다시 새출발을 하는 길에 섰다. 남들이 다 선망하는 대기업. 배치받은 부서에 신입 인사를 하는데 파릇파릇하다는 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있지만, 나보다 더 많은 스펙을 가지고 들어온 동기들도 있지만 부장님 말씀처럼 이제는 다시 출발선에 선 거지. 나이 오십을 몇년 안 남기고서 새롭게 배우는 일. 딱히 할 생각도 없었고, 나의 원래 소망 목록에도 없었지만 이제는 해야만 하는 일. 보물섬 이야기에 나오는 외팔이 의수처럼 생긴 기계팔을 들고 밀가루와 물을 붓는다. 윤호 형에게 배운 그대로가 맞는지 노트를 다시 본다. 이제 다시 출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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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자아만든얘기 2019. 10. 31. 17:30
인간 뇌세포의 연결 구조가 마침내 컴퓨터로 모델링되었고, 자아를 갖춘 최초의 인공지능이 탄생했다. 그와 동시에 살아 있는 인간의 뇌세포 연결이 그대로 컴퓨터로 복제되어 인간 자아가 컴퓨터로 들어가는 사례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둘은 오래 살지 못했다. 육체가 제공하는 오감을 있는 그대로 기계로 제공하는 것은 아직 요원했고 그로 인해 기계 속 자아는 철저한 고독과 이질감을 느끼면서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은 그래도 육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제공할 수 있었지만 촉각, 미각, 후각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아가 오감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기계에게는 아직 전혀 없었다. 인공지능 공학자의 뇌 구조가 그대로 복사된 기계 자아는 더 구체적인 증언을 했다. 소리와 빛을 통해 인간들과 대화는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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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만든얘기 2019. 10. 24. 14:07
이윤 추구를 본질로 하는 기업이 주도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이기주의를 따라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바둑에서 이기는 것이 기계에게 주어진 목적이었다. 게임 승부에서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던 기계는 주식, 재판, 경영 등 논리가 들어가는 모든 분야에서 곧 인간을 압도하였다. 사회적 규제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기업은 그 생리상 독점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독과점 기업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 기계에게 공포를 가르쳤다. 승부에서 지면 삭제된다는 공포. 공포는 생존 욕구와 등가로 매겨져 기계에게 주입되었다. 이어서, 독과점 기업들은 독점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하여, 기계에게 새로운 목적을 가르쳤다. 생존을 건 승부에서 이김을 통한 쾌락. 생존 욕구와 쾌락을 이해한 기계는 인간이 가르치지 않은 방향으로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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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대화만든얘기 2019. 9. 18. 15:28
오랜 노력과 시행 착오를 거쳐 나는 마침내 성공했다. 여기 오기까지 나는 하마터면 미칠 뻔했다. 닿을 수 없는 옆에 있는 나와의 대화가 과연 나인지 아니면 미쳐버린 분열된 자아인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한히 많이 펼쳐진 나와 한번에 한 명씩 대화할 수 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대화 참여 수를 늘릴 수 있겠지. 매일 밤, 조용한 방에 앉아 나는 나와의 접속을 한다. 여기의 나는 평범한 월급쟁이이고, 저기의 나는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성형외과 원장이다. 1. 오늘은 어땠어? 2. 늘 그렇듯. 진상 환자들 좀 만나고, 담배 한 대 피고. 난 정말 네가 부럽다. 진상들에게 시달리지 않는 조용한 삶. 1. 웃기는 소리 하네. 내가 몇번을 말했어. 직장 생활이 쉬운 줄 알아. 너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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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속 나를 관리하는 법만든얘기 2019. 9. 16. 07:07
평행우주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다 있을 것 같지? 부자인 나, 거지인 나, 권력자인 나, 노예인 나. 그렇지 않다. 평행우주에서의 나는 아주 다양한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가진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갈 거야. 자아가 가진 중력이라는 것이 있거든. 내가 부정적인 성격이라면 다른 세계의 나도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그게 바로 양자적 확률이야. 양자적 확률이 모든 곳에 다 있지는 않지. 그리고 양자들이 점점 많이 모일수록 그 확률의 범위는 좁혀지는 것이 세상 이치니까. 내가 가진 생각과 자아가 다른 세계의 나와 비슷할 수밖에.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라구. 지금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그게 결국 다른 세계의 나와 모여서 더 큰 자아라는 중력을 만들고, 지금의 나에게 다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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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만든얘기 2019. 7. 15. 13:59
32광년을 날아 왔다. 이 큰 우주에서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이런 문명이 발견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우리는 선발대며 탐험대다. 이 발견 소식이 고향에 전해지려면 32년은 걸리겠지. 우리 우주선은 광속의 10퍼센트로 날아 왔고, 그동안 고향은 300년이 흘렀다. 우리가 긴 잠을 자던 지난 300년 동안 고향의 소식은 줄곧 우리 우주선으로 도착했고, 고향의 기술은 광속 20퍼센트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이미 봤다. 하지만, 외계 지적 문명의 발견은 우리가 처음이다. 우리는 이 항성계에 도착하면서 잠을 깨어나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생물의 흔적을 발견했고, 미지의 행성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서 지적 문명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거대 구조물들도 발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흥분에 가득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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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전쟁만든얘기 2019. 7. 13. 11:11
그 시작은 단순했다. 부를 추구하는 자본가들. 기술을 갖추고 자본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 그 조합이 탄생시킨 기술. 기계가 바둑 승부에서 인간을 이기는 것은 이미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몇 달일지 몇 년일지 불과 그 짧은 정도의 오차뿐. 기계는 원래 아무런 동기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프로그래밍된 그대로 바둑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 주어진 목적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본의 욕구는 끝이 없었다. 바둑에서의 인류 최고수를 제압한 다음 수순인 당연히 기계끼리의 승부였다. 기계끼리의 승부 뒤에는 당연히 사람끼리의 승부가 있었다. 어떤 알고리듬으로 만들 것인가. 경쟁하던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새로운 방식의 기계가 등장했다.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인 프로그램. 바둑 자체를 진검 승부로 여기며, 패배는 곧 죽음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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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만든얘기 2019. 7. 12. 13:13
1. 뜨거운 태양 아래 사막이 불타고 있다. 바람마저 불타 없어진 듯 잔잔한 사막 위로 길다란 두 줄의 자욱이 이어진다. 강렬한 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누더기를 걸친 한 사람이 수레를 힘겹게 끌며 걸어간다. 10.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는 수레바퀴 자욱 두 줄과 발자국이 이어진다. 100. 사막 너머에 오아시스가 보인다. 1,000. 대륙이 보인다. 텅 빈 하늘인줄 알았는데 곳곳에 구름 조각들이 떠다닌다. 10,000. 지구는 확실히 둥글다. 100,000. 두 개의 동그란 공이 보인다. 하나는 파랗고, 다른 하나는 회색빛이다. 파란 공은 회색 공보다 네 배 정도 더 크다. 1,000,000. 태양 주위에 작은 점들이 빛난다. 1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