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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광년을 날아 왔다. 이 큰 우주에서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이런 문명이 발견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우리는 선발대며 탐험대다. 이 발견 소식이 고향에 전해지려면 32년은 걸리겠지.
우리 우주선은 광속의 10퍼센트로 날아 왔고, 그동안 고향은 300년이 흘렀다. 우리가 긴 잠을 자던 지난 300년 동안 고향의 소식은 줄곧 우리 우주선으로 도착했고, 고향의 기술은 광속 20퍼센트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이미 봤다. 하지만, 외계 지적 문명의 발견은 우리가 처음이다.
우리는 이 항성계에 도착하면서 잠을 깨어나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생물의 흔적을 발견했고, 미지의 행성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서 지적 문명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거대 구조물들도 발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흥분에 가득찼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아직 전파 문명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등장은 저들에게는 거대한 충격과도 같은 것일테니.
우리는 조심스레 먼 궤도에서부터 시작했다. 웬만한 전파 문명이 아니고서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거리에서.
지상 거대 구조물이 여럿 더 발견되었으나, 활동의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조심스레 더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점점 더 안타까운 우려가 우리들 사이에 떠올랐다. 이들은 자멸한 것일까? 아니면 터전을 버리고 모두들 다른 곳으로 간 것일까?
우리는 마침내 지상에 착륙했다. 미생물 몇 종 외에는 아무런 생명의 흔적이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유물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유물로밖에는 부를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 시점부터였다.
여러 종류의 문자들이 여기 저기서 발굴되었고, 마침내 전자 기록의 파편들도 발견되었다. 몇 달 간의 입력을 했고, 고향으로의 전송과 동시에 우리도 분석을 시작했다.
유기물 형태로는 아직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고, 연대 측정을 통해 추정컨대 마지막 문명 활동 이후 이미 2만년도 더 흘렀으니 제대로 분석 가능한 유기물이 발견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고 있었다.
다만, 여지껏 분해되지 않고 남은 인쇄물들과 조각난 전자 기록들로부터 영상 정보는 점점 더 많이 축적되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우리 역사와 닮았다. 미생물에서 출발했고, 진화를 거쳤고, 지적 문명이 등장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갈등의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리와 궤적을 달리한 지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만든 무기로 인해 멸망했다. 그간 쌓여온 기록들을 통해 추측하던 우리의 우려가 맞았다. 핵이었다. 그들은 핵무기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사라졌다.
여러 종교들이 나타났고, 여러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쳤다. 이 문명은 우리와는 다른 도구를 하나 더 발명했다. 그것이 이 고대 문명에서 정확히 어떤 발음으로 불리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개념으로 최대한 가깝게 설명하자면 일종의 교환 수단이다. 우리도 교환 수단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교환 수단은 어느 시점에선가 그 자체가 하나의 존재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결국 멸망으로 이르는 스위치가 되었다.
단일신을 믿는 집단끼리도 갈등을 했고, 역사와 문화의 배경이 다른 것도 갈등의 수단이 되었고, 때로는 전쟁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은 서로를 향해 최후의 수단을 발사해버렸다. 그 이후로도 백여년 동안 살아 남은 자들의 기록이 희미하게나마 보이지만, 그것은 죽어가는 생명이 남기는 마지막 몸부림과도 같았다.
이들이 우리 항성계를 발견했다는 기록도 찾았다. 우리가 이들 항성계를 발견한 것과 거의 비슷한 시점이다. 우리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역사와 문명을 가졌던 이들. 하지만 그 교환 수단으로 인해 스스로 멸망의 길로 접어든 이들.
우리는 고향으로 마지막 보고서를 썼다. 고향에서는 우리가 출발한 이래 300년이 지났지만, 세 개의 국가가 여전히 풀지 못한 인종과, 역사와, 철학의 차이로 최종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보고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손바닥만한 섬유질 면이나 자그마한 금속 원판에 인쇄된 기호로 인해 촉발된 전쟁으로 인해 자멸해버린 문명. 우리 중 누군가는 비웃듯 말했다.
"바보들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이렇듯 아름다운 문명을 이런 것 때문에 스스로 부수고 자멸하다니."
우리 탐사대장은 그 대원을 나무라듯 말했다.
"그렇게 단정짓진 말자고. 우리도 여지껏 생김새와, 지난 시간의 차이와, 우주를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로 갈등하고 있다고 계속 뉴스를 받고 있잖아? 자, 우리 투표 결과는 나왔어?"
우리 투표 결과가 나왔다.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부터 58광년 떨어진 또다른 곳으로 향할 것인가? 우리 모두 내심 기대 또는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
돌아가면 우리의 출발로부터 600년이 흘렀을 터. 우리에게는 상징적인 고향일 뿐, 돌아간들 거기는 우리에게 또다른 탐험의 대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100년을 또 자게 된다. 뭐, 어때. 우리는 이미 이런 걸 예상하고 출발했을 뿐. 다만, 이번에는 살아있는 세계를 만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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