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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노력과 시행 착오를 거쳐 나는 마침내 성공했다. 여기 오기까지 나는 하마터면 미칠 뻔했다. 닿을 수 없는 옆에 있는 나와의 대화가 과연 나인지 아니면 미쳐버린 분열된 자아인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한히 많이 펼쳐진 나와 한번에 한 명씩 대화할 수 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대화 참여 수를 늘릴 수 있겠지. 매일 밤, 조용한 방에 앉아 나는 나와의 접속을 한다.
여기의 나는 평범한 월급쟁이이고, 저기의 나는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성형외과 원장이다.
1. 오늘은 어땠어?
2. 늘 그렇듯. 진상 환자들 좀 만나고, 담배 한 대 피고. 난 정말 네가 부럽다. 진상들에게 시달리지 않는 조용한 삶.
1. 웃기는 소리 하네. 내가 몇번을 말했어. 직장 생활이 쉬운 줄 알아. 너는 그래도 병원의 장이잖아. 돈은 또 얼마나 많고. 세상에나, 난 지금 네가 가진 그 건물 앞에 오늘도 가서 서성였어. 내가 마음만 잘 먹었어도 저게 지금 내 건데.
2. 돈이 많은 것이 고통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인간 관계니 뭐니 모든게 꼬여만 가네.
1. 호강에 받혀 요강에 빠지는 소리를 하고 있구만. 내가 능력만 되면 너랑 자리를 바꾸고 싶네. 하지만 지금 우리 사이는 너무 멀지.
2. 내가 지금 너 듣기 좋으라고 입에 발린 소리 하는 거 절대로 아니다. 평범한 듯 사는게 제일 좋은 거야.
1. 고만 웃기고. 오늘은 그만 끊자. 술이나 한잔 할란다.
정말 궁금하다. 많이 가지면 그것이 또 고통일까? 다음 번엔 정말 없이 사는 나를 찾아서 접속해 봐야지.
1. 안녕? 이제 우리 사이는 알겠지?
2. 그래. 넌 그냥 평범한 월급쟁이라고? 난 네가 다니는 직장 잘 알아. 뭐,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속한 거시 세계는 거의 비슷하니 거기도 여기랑 마찬가지겠지? 남들이 다 선망하는 그런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뭔 불만이 그리 많아? 그 회사가 사회적으로는 문제시되는 일들을 좀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소위 글로벌하게 잘 나가잖아.
1. 아니, 돌아 버리겠어.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야. 아래 위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처럼 돼서 원. 여튼 너는 성형 원장은 이미 만났겠지?
2. 응. 정말 밥맛 떨어지는 새끼더만. 가진 것이 고통이라니. 나 참. 난 앞으로 그 자식과의 접속은 안 할 거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1. 그나저나, 넌 자연 속에 홀로 사니까 그래도 마음은 편하지 않아?
2. 웃기지 마. 예전 그 새끼. 아, 아마 너도 만났겠지? 가짜 도사 행세하는 그 새끼 꼬임에만 안 넘어갔어도 너처럼 살아 가는 건데. 난 지금 죽지 못해 산다. 넌 그래도 엄마가 3년 전에 돌아가셨다며? 여기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홧병으로 20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 난, 아직도 그 죄책감에 시달려.
세상사 다 똑같은 것인가? 사람은 절대로 만족을 못하는 동물인가?
나는 오늘도 또다른 나를 찾아 접속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