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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독서, 그리고 지식삶은다껌 2019. 8. 9. 09:00
지적 생명체인 인간이 도대체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좋은 답 중의 하나는, 정보를 생성하고 공유하기 위함이라는 이다. (왜 정보를 생성하고 공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까지는 일단 가지 말자. 너무 멀고 어렵다. 하지만 분명 의미는 있다.)
정보화 시대라는 말도 이미 한물 지난 시사용어로 간주될 정도로, 우리는 대단한 정보 시대를 살고 있다. 80년대 중후반의 개인용 컴퓨터를 능가하는 성능을 가진 스마트폰이 우리 손에 이미 쥐어져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모습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손에 책을 쥐고 읽는 모습이다. 물론, 사실상 책과 다를 바 없는, 또는 어떤 관점에서는 책보다 더 뛰어난 정보 제공력을 보여주는 전자책이 이미 기술적으로 활성화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단한 정보 기기들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기계 화면을 어깨 너머로 넌지시 보면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십중팔구 다음 넷 중 하나다. 게임, 채팅, 동영상, 아니면 그냥 뉴스 검색.
완전히 동일한 내용을 담은 소설과 영화가 있다. 이 중 어느 것이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될까? 나는 단연코 책이 영화를 능가한다고 본다. 영화는 영상이라는 강력한 시각적 도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영상이라는 그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시각적 정보 제공으로 인해 웬만하면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정보 주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글자와 단어와 문장을 통해 내 머리로 들어온 묘사는 내 나름의 심상을 구성한다. 모호하지만 따라서 더 변주 가능성이 높은 심상이 되는 것이다.
스타워즈의 다쓰 베이더가 글로 묘사되었다면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는 그 나름의 심상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상으로 등장한 다쓰 베이더는 딱 하나의 정확한, 따라서 단일하고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심상을 준다. 영화를 없애자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다만, 책을 너무 읽지 않는 시대가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책이라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매력과 가능성이 점점 그 입지를 잃고 있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영화는 말 그대로 개나 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책의 경우는 그 똑똑한 동물들이라는 돌고래도 침팬지도 읽을 수 없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다. (개나 돌고래에게 영화 속 다쓰 베이더가 어떤 심상으로 이해될지는 그 나름의 인지과학적 연구대상으로 삼아볼 수는 있겠다.)
과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명 물리학자들의 대중과학서를 책으로 읽을 때는 많은 생각과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책으로 봤던 초끈이론에 대한 내용이 그대로 영상물로 제작되었을 때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론, 아주 애매모호하던 개념을 영상으로 봐서 이해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내가 가졌던 우주의 신비에 대한 감흥이 많이 사라지는 실망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성향은 결코 보수적이지 않다. 따라서 영화보다 책이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내 주장은 꼰대부리는 얘기가 아니라, 영화가 다소 일방적인 정보 주입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지적에서 시작한다. (관련 연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정보화 시대를 부정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다만, 책이라는 그 고유의 대단한 기능을 바탕으로 정보 기술이 얹어질 때 우리 인간들의 지적 능력 개발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작은 바램에서 하는 말이다.시각 정보의 위력은 대단하다. 말과 글과 수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개념을 동영상을 봄으로써 마침내 이해하는 경우가 아주 많고 그러한 정보 시대의 혜택을 나도 엄청 고마워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상력에 대한 자극이라는 면에서는 글로 된 책이 영상 정보보다는 훨씬 좋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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