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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여러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가장 간단한 것으로는 긴 잠이 있다. 동면이든 뭐든 어떤 의학적 수단을 통해 나의 신진대사는 느리게 하여 노화를 늦추고 수십년 수백년간 잠이 들었다가 깨면 적어도 나 혼자서는 미래로의 여행을 한 셈이 된다. 좀 크게 보자면 우리 모두는 미래로의 여행을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다.
반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당장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과 그에 따른 역설적 상황을 다룬 소설과 영화들은 엄청나게 많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일으킬 수 있는 역설은 물리학에서도 큰 논의 주제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엄마와 아버지의 결혼을 막아 버린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되고, 그렇다면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나는 누구인가?
만약 평행우주라는 것이 있다면 이러한 고민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으로서의 현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부모님이 나를 낳지 않는 상황에 등장한 미래로부터의 나는 그냥 그 해당 우주의 손님인 셈이다.
어벤저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엔드 게임의 마지막 부분은 캡틴 스티브가 과거로 가서 현재로 복귀하지 않고 그냥 눌러앉아 페기와 결혼하고 그대로 늙어 현재의 어벤저스 멤버들과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커다란 역설이 이미 있다. 어벤저스 시리즈를 시간 순으로 복기해보면, 스티브는 페기와 어쩔 수 없이 헤어졌고 나중에 냉동에서 풀린 스티브는 이미 삶의 끝에 도달한 페기의 죽음을 보고 장례식에도 간다. 그런데 엔드 게임에서 스티브는 어느 시점의 과거로 가서 페기를 만나 가정을 이룬다. 여기서부터 두 개의 현실이 갈라질 수밖에 없다. 현실이 두 개로 나뉘어지지 않으면 중간에 커다란 역설이 이미 나타난다. 스티브와 결혼한 페기와, 스티브가 아닌 다른 이와 결혼한 페기가 하나의 현실에 공존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상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간 시점에서 자기의 현재로 복귀하지 않고 그 과거를 새로운 현재로 삼아 살아가는 스티브에게 엔드 게임 상황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그 비슷한 북새통 외계인 전쟁 상황이 또 나타난다 한들 그것은 자신이 복귀하지 않은 현재와는 분명히 다른 현실이 된다. 즉, 현재로 복귀하지 않은 이상 스티브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남아 살아간 과거로부터 시간이 흐르면 그는 절대로 자신이 떠났던 바로 그 엔드 게임 막바지 장면에는 등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리적 실체를 가진 존재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이러한 역설에 앞서 질량 보존의 법칙에도 위배된다. 내가 과거로 간다면 나의 현재에서는 한 명의 질량이 사라지며, 어느 과거 시점에는 갑자기 한 명의 질량이 증가한다. 비록 평행우주가 있다 한들 과거로의 시간여행과 더불어 평행우주 사이에서의 순간이동도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 우주 질서 유지를 위한 가장 근본 법칙 중 하나라면.
대신, 이런 상상을 해보자. 물질을 가진 몸은 이동할 수 없더라도 정보는 이동할 수 있을까? 월요일의 내가 지난 주 금요일의 내게 정보를 보내어 복권 번호를 알려줄 수 있다면? 이 역시 평행우주가 아니고서는 역설을 낳을 수밖에 없다. 월요일의 내가 지난 금요일의 내게 복권 번호를 알려줬지만, 지금 월요일의 내 기억에는 지난 금요일날 꿈에서라도 당첨 번호를 본 기억은 없으며 어차피 지금 월요일의 나는 꽝 맞은 복권만 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날 어떤 계시처럼 당첨 번호를 점지 받은 나는 또다른 지금 월요일에 엄청나게 뛰는 가슴을 안고 당첨금 받으러 가고 있겠지만.
평행우주 사이에 정보 전달이 가능할지 여부는, 평행우주의 존재조차 아직은 물리학적 상상에 머무는 현실에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나의 어설픈 상상으로는 그러한 정보 전달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냥 바라고 있다. 복권 대박 맞고 싶다는 현실적 욕구도 있지만, 그러한 정보 전달이 가능해야 이 외로운 우주에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에 약간의 빛이 비춰지는 것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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