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 가서 짬뽕을 먹었다. 원래 해물이 푸짐한 짬뽕으로 유명한 집이었고 차림표상 이름 역시 '해물짬뽕'이다.
그런데 먹다 보니 해물이 없어도 너~무 없다. 내것만 우연히 그런가 싶어 아이들 것을 봐도 해물이 없다. 새끼 손가락 만한 오징어 몸통 조각이 그릇별로 한두개씩. 그게 다였다.
종업원을 불러서 물었다. 자기네들은 원래 그랬다고 한다. 내가 이 집에 몇년째인데.. 식의 진상은 안 부렸다.
그 집의 계산대에는 늘 사장 아주머니가 있다. 계산을 하면서 불평을 곁들여 물어봤다. 해물짬뽕에 해물이 너무 없다고. 돌아오는 대답인즉,
"우린 원래 해물로 육수를 내요. 그러니까 건더기는 거의 없지요.
내 결론은 간단했다. 다시 안 가면 되는 것. 이 집은 단골 가족 하나 놓치는 것이다. 우리 가족 안 간다 해서 얼마나 큰 손실이 될지는 나야 알 바 없지만.
몇년 전, 자동차를 새로 받고 얼마 안 가 있었던 일이다. 블루투스 동기화된 전화번호부 목록이 자꾸 지워진다.
한 두번 시험을 해보니, 오류는 간단히 발견되었다. 시동을 끄고, 열쇠를 뽑으면 전화번호부가 몽땅 지워지는 것.
서비스센터에 가서 설명을 했다. 내가 보기에는 회로 또는 소프트웨어 오류인 것 같으니, 당분간 그냥 쓸 테니까 언제쯤 오류 수정을 할 것인지 그것만 나중에 알려달라고.
서비스센터의 친절한 담당자는 굳이 장비를 교체해보겠단다. 나는 이미 추측을 했다. 부품의 설계 오류일 것이니, 교체해봐야 똑같은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내 예상이 맞았다. 신품으로 교체했지만 똑같은 오류가 났다. 서비스센터 책임자까지 나와서 내게 하는 설명이 이랬다.
"고객님께서 '뽑기'를 잘못하신 것 같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PPM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요즘 생산기술일텐데, 2연속 뽑기 오류라니. 그런 설명은 필요없고, 다만 언제쯤 오류 수정이 될 것인지 그 일정만 나중에 연락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급기야 그 자동차 회사의 고객담당 부서에서 내게 전화가 와서 또 그 '뽑기 운'을 얘기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화를 냈다. 그냥 설계 오류라고 인정하고 수리 일정만 알려주면 될 것을 왜 자꾸 문제의 본질을 흐리냐고.
그리고 나는 마음을 먹었다. 그 회사의 자동차는 앞으로 내 인생에서는 없다고.
그냥, 오류를 인정했으면 끝날 일을 굳이 요즘 시대에 맞지도 않는 '뽑기'를 거론하며 상황만을 모면하려다가 충성 고객 하나 놓친 거다.
충성 고객을 놓친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예전에 일하던 사무실 앞에는 유명한 닭집이 있었다. 치맥이라는 이름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그 일대에서는 유명한 닭+맥주집이었는데, 정작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안주는 따로 있었다. 낙지조개탕. 일명 낙조탕.
국물 맛이 일품인 안주였다.
어느날, 회사 일로 중요한 고객 두 명을 이 집으로 안내했다. 소주와 바로 그 낙조탕을 즐기기 위해.
그런데, 낙조탕이 나오고 보니, 낙지가 아닌 오징어가 가득했다.
나는 순간 당황하여, 종업원을 불렀다. 중국식 억양을 강하게 쓰는 종업원은, 여기 왜 낙지가 아니라 오징어가 나왔냐고 묻는 내게 우긴다.
"그거, 낙지 맞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는 순간이었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낙지와 오징어도 구분 못하겠냐고 따지는데도 굳이 낙지라고 우긴다.
급기야, 주방장이 나왔다. 주방 아주머니는 결국 인정했다. 자기가 실수로 오징어를 넣었다고.
뭔가 이상했다. 간판 자체에 30년 전통이라고 적었고, 나 역시 10여년을 애용한 집인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그 집은 몇 달 가지 않아 문을 닫았다. 나중에 소문으로 들으니, 원래 가게를 중국 자본이 인수했고 얼마 안 가 망했다는 것.
해물 좀 덜 넣었다는 실수를 인정했으면,
블루투스 기능의 오류임을 인정했으면,
낙지가 아닌 오징어를 '실수'로 넣었다고 진작 인정했으면, 나처럼 무딘 사람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이런 가게나 회사들은 그냥 자기 발로 걷어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