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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숙제 02 - 영어 이름 안 만들면 영어가 더 빨리 는다.경영개론 2019. 6. 25. 09:02
옆자리에 전화가 왔는데 담당자가 없어서 내가 당겨 받았다. 하비에르를 찾는다. 하비에르가 누구지? 설마 옆자리 박ㅇㅇ이 하비에르?
그렇다. 옆자리 박ㅇㅇ은 영어 이름 제이크도 있고, 스페인어 이름 하비에르도 쓰고 있었다! 배알 없는 자식 같으니. 베트남이나 이탈리아 이름은 없는지 문득 궁금했지만, 그것까지 묻지는 않았다.
우리네 명함은 대부분 양면으로 한 면은 한글로 다른 쪽은 영어로 표기한다. 그런데 명함의 영어면에 본인의 한글 이름을 알파벳으로 표기하기보다 영어식 이름 또는 한글 이름의 약자를 표기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는. 홍길동이 제이슨 홍으로 또는 GD 홍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그나마 좀 나은 경우라면 길 홍으로 쓰는 것. 길동 홍에서 동이 사라지고 길 홍이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글은 음절 문자이다 보니 우리는 소위 이름 세글자라고 부르고 여권에도 홍길동은 GIL DONG HONG 방식으로 쓰인다. 중간 이름(미들 네임)이 익숙한 문화권에서는 DONG을 중간 이름으로 간주하고서는 아 이 사람 first name은 GIL이구나로 오해한다.
상대가 오해하면 그걸 바로 잡아주면 되는데, 아 그나마 외국'분'이 첫 글자만 발음하면 쉽겠구나 지레 꼬리를 내리고는 스스로 길 홍이 되는 것이다. 완전 영어 이름이 아니니 조금 낫다고 봐 줄 수는 있지만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나는 예전부터 이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어는 외국어이고, 내가 상대와의 의사 소통을 위해서 쓰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왜 내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영어를 써야 하지? 영어 이름을 쓰는 지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상대를 배려해서란다. 외국인이 우리네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우니 그걸 배려해서 그런다고. 지극히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다. 이런 식이면 세종대왕은 알렉산더라고 불러야 하고, 경복궁은 버킹엄이라 해야 하지 않나?
예능 방송을 보면 우리네 영어 사대주의를 자꾸 심화시키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영어를 잘 하는 출연자는 뭔가 지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눈 파랗고 머리 노란 외국인 앞에서 영어를 잘 못하는 출연자는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뭔가를 자꾸 죄송해한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라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과의 대화가 불편하면 그냥 불편한 것이지, 그 사람에게 내가 도대체 왜 그리 죄송해야 하는지?
영어 이름도 바로 이런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외국인 특히 머리 노랗고 눈 파란 영어 원어민에게 한없이 약해지는 사대주의. 저 외국'분'에게 뭔가 잘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괜한 미안함과 지나친 배려.
우리나라 축구는 여전히 많이 헤매는 편이지만, 그래도 2002 월드컵을 분수령으로 해서 그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특히 유럽이나 남미의 강팀에 대한 승률이 2002년을 기점으로 확 바뀌었다. 히딩크라는 걸출한 감독 덕을 엄청 많이 봤는데 그의 지도 전략 중에는 "쓸데없이 쫄지 마라"가 있었다. 강팀은 강할 것이니 나는 어차피 진다라는 생각을 미리 깔고 들어가는데 상대를 이기기 어렵다. 영화 넘버 쓰리였던가? 송강호씨의 대사가 아마 대충 이랬을 것이다.
너, 황소? 나, 최영의
그렇다. 황소 앞에서도 쫄지 않으니 소도 때려 잡는다는 그의 정신.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너 외국인? 너 영어 원어민? 나 한국인. 나 영어 배웠어. 너 한국말 못 해. 근데 난 널 위해 영어 해. 그러니 지금부터 니가 정신 바짝 차리고 내 말 알아듣기다.
우리 이름 발음이 어려우니 상대를 위해 내가 영어 이름을 만든다? 이건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 시작되면, 나는 계속 주눅이 든다. 아, 내 말을 이 분이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내 문법은 괜찮으려나? 내 발음이 어색할텐데? 이렇게 걱정만 하다가 입도 벙긋 못해보고 돌아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나는 원래 내 이름을 그대로 쓰고, 혹시 알파벳으로 표현된 내 이름 발음을 상대가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 그걸 정확하게 알려주면 된다. 영어 이름의 경우 특히 성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때도 나는 그냥 담담히 물어보면 된다. 당신 성 어떻게 발음하냐고.
일단 이렇게 서로 같은 위치에서 대화가 시작되면 그 다음으로 극복해야 할 고질병이 그 놈의 발음이나 문법에 대한 걱정이다. 일단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 요즘에도 서점이나 방송 등에 보면 뉴욕식 영어니 뭐니 해서 돈 벌어 먹는 작자들이 보이는데, 이 세상 영어에 표준어는 없다. 그나마 조상 영어로 대접받는 것이 있다면 영국 런던식이랄까? 뉴욕식 영어 발음은 결코 국제 표준도 아니고, 실제 비즈니스에서 통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한 동네 사투리일 뿐이다.
그냥 또렷한 발음과 어느 정도의 문법만 갖추면 대화는 자연스레 시작되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영어와 우리말의 차이를 보면서 발음 또렷이 하기를 살펴 보자. - 그럼 다음에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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