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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마케팅, 광고경영개론 2019. 7. 22. 11:52
199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나른한 주말에 TV를 보다 스르르 낮잠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광고가 TV 화면에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이 나온다. 스티브 맥퀸이 감옥 독방에서 기운을 차리기 위해 벌레를 잡아먹는 대목이다.
벽을 기어가던 바퀴벌레들이 차례로 8각형 작은 플라스틱 상자로 들어간다. 잠결에도 궁금했다. 영화에 저런 장면이 있었나?
스티브 맥퀸이 더빙으로 독백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으, 로취큐 때문에...”
맞다. 로취큐는 바퀴벌레 잡는 살충제 이름이다. 이 한 편의 광고로 내게는 로취큐라는 이름이 각인되었다. 광고 자체가 정말 재미있고 기발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 출장을 갔다. 숙소에 앉아 이리저리 티비 채널을 돌리는데 웬 젊은 여성이 흑백으로 처리된 화면 속에서 어떤 운동실 같은 곳에 앉아 아령을 열심히 들어올리고 있다. 운동하는 여성의 건강한 숨소리만 계속 나온다. 이상하다. 이거 분명히 광고 시간 중인데.
그런 단순한 화면이 지나간 후 화면에는 갑자기 대형 W 마크와 함께 폭스바겐이라는 자동차 이름이 튀어나온다. 그게 전부였다. 자동차는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내 기억에는 폭스바겐이 선명히 새겨졌다. 처음에는 별 시덥잖은 광고도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에는 선명히 남아 버렸다. 그 이유는 도대체 모르겠다. 너무 뜬금없기 때문에 어이가 없어서 기억나는 것인지. 하여튼, 소비자에 대한 브랜드 각인이라는 측면에서는 성공한 셈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다. 그가 주연한 록키라는 영화가 있다. 2007년이던가, 시리즈 번호를 붙이다가 관객들에게 미안했는지 아니면 자기들도 겸연쩍었는지 ‘록키 발보아’라는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제목으로 썼다. 하지만 그 이전에, 록키 영화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1980년대 초반 당시에도 (그 때가 아마 록키 시리즈 3편 정도 되었을 것이다.) 내게는 록키 발보아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록키 발보아. 록키야 영화 제목이라 치더라도 발보아라는 성이 어린 내게 왜 그렇게 선명히 기억되었을까? 기억을 다시 되돌려봐도 나는 록키 3편을 제일 먼저 봤고, 앞서의 1편과 2편은 나중에 TV로 봤을 뿐이다. 그럼에도 단 한 편의 영화에서 록키 발보아라는 이름이 기억되었다. 어린 청소년에게 뭔가 멋있게 들린 것일까? 어찌 보면 그냥 이탈리아식 성일 뿐인데. 영화 속 장내 아나운서의 발음이 참 멋졌기 때문일까? 이 역시 내 머리에 각인된 이유는 모르겠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다이 하드 시리즈. 그 첫 편을 1987년에 봤다. 죤 맥클레인이라는 주인공 이름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오히려 당시의 나는 배우의 진짜 이름 브루스 윌리스보다 영화 속 이름 죤 맥클레인을 먼저 떠올렸다.
록키나 다이 하드 영화를 곰곰 되짚어 보면 영화 속에서 주인공 이름이 여러 번 반복된다. 록키는 권투영화이다 보니 경기 시작 전에 반복적으로 주인공 이름이 나오고, 다이 하드의 경우 영화 속 테러리스트가 반복적으로 죤 맥클레인이라는 이름과 성을 부른다.
그런데 따지고 보니, 다이 하드 1편의 테러리스트의 영화 속 이름도 단 한 번 영화를 보고서도 선명히 기억에 남았다. 한스 그루버. 뭔가 이름이 혀에 착 감기는 쪽을 일부러 골랐을까? 나로서는 모른다.
스티븐 시걸은 미국의 액션 배우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 사람 영화는 꽤 여러 편을 봤다. 심지어 언더 씨즈 시리즈는 TV로도 지겹지 않게 여러 번을 봤다. 내용의 수준을 떠나 시간 죽이기에 참 알맞도록 재밌게 만든 영화다. 그럼에도 언더 씨즈 영화 속에서 주인공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그의 다른 영화에서 주인공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영화에서 그는 스티븐 시걸이라는 실명으로만 기억난다. (캐시 라이백...이었던가?)
주인공 이름보다 영화배우 실명만 또렷이 떠오르는 경우는 이 외에도 아놀드 슈왈제너거가 있다. 프레데터에서, 트루 라이즈에서, 그 외 다른 영화에서 그의 영화 속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근육맨 아놀드 슈왈제너거로서의 인상이 너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다섯 편 찍었다. 그의 영화 속 이름인 에단 헌터는 기억을 짜내야 겨우 생각난다. 하기야, 톰 크루즈가 곧 에단 헌터와 동일시 되는 수준이 되었으니.
터미네이터 영화의 주인공 터미네이터 모델명이 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터미네이터 2편에 나왔던 액체 로보트의 모델명은 선명히 기억난다. T-1000. 터미네이터 3편에는 한층 진화한 변신 로보트가 나오지만 그 아리따운 로보트 역시 모델명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록키 발보아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 승리를 보여 주는 감동이 있었고, 죤 맥클레인의 경우도 실제로는 말이 안 되지만 어쨌든 영화 속에서 그 어려운 상황들을 다소 평범한 사람이 헤쳐나가는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보여주었다. T-1000의 경우는 그 화려한 영상 기술 자체가 엄청 강한 충격과도 같은 인상을 남겼다.
바퀴벌레 잡는 약 로취큐도 당시로서는 대단히 황당한 광고 영상을 통해 강력한 기억을 남겼고, 폭스바겐의 경우는 광고 기획자가 원래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완전 뒤통수 치는 듯한 전혀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없는 화면 전환으로 내게 선명한 기억을 남겼다.
광고는 애초에 제품의 이름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니 로취큐나 폭스바겐의 경우 그걸 기획한 사람의 창의성이 대단하다.
주인공 이름이 선명하게 남은 영화의 경우, 나름 해당 배우들이 그 역에 몰입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혹은 영화 속 특정 상황 자체가 어우러져 그러한 기억을 남겼을 수도 있다.
마케팅. 참으로 재밌으면서도, 어려운 분야다.'경영개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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