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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숙제 06 - 우리 안의 사대주의를 없애기경영개론 2019. 7. 9. 18:32
한국 내 모 프로젝트 협업을 위해 같이 일하던 유럽의 모 회사 동료들. 일은 여차 저차 끝났고, 상대 쪽에서 그간 도와준 것에 대한 인사라며 내게 점심을 산다고 한다. 장소는 서울 시내 모처의 고급 서양식당. 얻어 먹는 내 쪽에서 메뉴를 정할 바는 안 되니 그들을 따라 갔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종업원이 나를 따라 다니며 묻는다. 저희 식당 온도가 외국 분들에게 적당할까요, 저희 식당 ...이 외국 분들에게, 외국 분들에게 ... 나는 진상처럼 못되게 대꾸를 했다. '내가 여기 손님입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모시고 온 거에요. 물어보려면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외국인 동료들이 한국에 출장 온 길에, 한국식 저녁 술문화를 소개시켜 주려 고깃집 등에 가면 외국 친구들이 앉은 자리에만 고기를 구워주고 잘라준다. 원래 이 집은 손님들이 직접 구워 먹는 곳인데. 친절히 고기를 자르는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는 왜 안 잘라 줘요?' 직원은 웃으며 대답한다. '손님은 한국인이라 잘 하시잖아요.'
글쎄. 같은 돈 내고 먹는 같은 손님들이다. 왜 꼭 외국인들에게만 저렇게 특별 대우를 해줘야 할까? 못된 상상도 해본다. 저 외국인들이 머리 노랗고 눈 파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보다 피부색이 더 짙은 사람들이라면 저렇게 대할까?
서양 동료를 내 차에 태우고 어디 약속 장소에 가다 보면 나는 그냥 운전기사 취급받는 경우도 자주 있다. 왜 우리는 꼭 이런 가정을 먼저 해버리는 걸까? 머리 노란 사람이면 으레 중요한 고객이고, 한국인인 나는 그냥 그 '분'을 모시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선입견.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한국 식당 등에서는 영어가 잘 안 통해서 불편하다는 말이 나오면 언론은 이를 두고 반성하자는 투로 말한다. 글쎄. 내 나라 내 땅에서 내가 한국말만 주로 하고, 영어가 잘 안 되는 것은 당연지사. 우리는 미국이나 영국을 여행하고 나서 그 나라에서 한국말이 안 통해서 불편하더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한편, 프랑스나 중국 등,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 다닐 때 나는 그 나라 말을 못하고, 현지 식당 등에서는 그나마 나의 영어가 잘 안 통해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는 당연히 자주 있다. 하지만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걸 가지고 그렇게 뭐 이런 데가 있냐는 식으로 툴툴거리지는 않는다.
기왕이면 외국어 하나쯤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내 경쟁력에 도움이 되고, 내 직장이나 내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어로 대표되는 외국어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그 말을 좀 할 줄 알면 그만큼 편한 것일 뿐. 그것이 결코 내 지성이 더 뛰어나다는 장식물일 수는 없다.
영어를 모시는 순간, 그 때부터 나는 한 수 접고 들어가게 된다. 당당해지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회식 장면 하나가 생각난다. 후배들의 뜻에 따라 그 날 회식은 삼겹살에 소주 대신 스파게티에 포도주를 마시기로 했다. 나는 국수를 포크로 먹는 것이 못내 어색해서, 혹시 젓가락 있냐고 물어봤다. 정작, 직원은 내게 젓가락을 가져다줬는데 후배들은 나를 놀리듯이 말했다. '쪽팔리게, 스파게티 집에서 웬 젓가락?"
서양사람들이 한국식당에 들어가면 포크를 못 줘서 안달난 사람들이, 한국 땅에서 서양 국수를 먹으며 젓가락을 찾는 나는 촌스럽다고 한다. 이런 이상한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나오는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영어를 잘 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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