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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적 호기심 - 잘 나가는 조직, 주저 앉는 조직
    경영개론 2019. 7. 15. 09:13

    정보통신 사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그에 관한 핵심 기술 하나를 잘 갈고 닦아 원래 잘 나갔고, 지금은 더 잘 나가는 회사 A. 어느날, 이 회사의 부사장과 저녁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술이 몇 잔 돌고, 나는 내심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양자 컴퓨팅이 언제쯤 가능해질까요?'

    '그건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네요. 하지만 저희 회사는 지금 기초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몇마디 더 질문과 대답이 오갔고, 물리학이나 전산에 관한 내 지식이야 뻔했기 때문에 양자 컴퓨팅에 관한 얘기는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 회사는 원래 분야에서의 엄청난 강자로 버티고 있다.

    그 무렵, 분야는 다르지만 나름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던 B사 사장을 만날 일이 몇 번 있었다. 좀 친해지고 난 후, 나는 호기심을 담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양자 컴퓨팅.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별로 안 바쁘신가 봐요? 뭐, 그런 아직 될지 말지도 모르는 분야에 신경을 쓰시고.'

    정보통신(IT) 분야는 롤러 코스터라 불리기도 한다. 성장할 때는 가파르지만 무너질 때는 올라간 위치 에너지까지 더해서 낭떠러지에서의 자유 낙하처럼 바닥으로 가기 때문이다. 얼마 가지 않아 B사의 부도 뉴스를 들었다.

     

    양자 컴퓨팅에 관한 호기심 유무가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탐구의 차이가 두 회사의 운명을 갈랐다. 이건 달리 보면 선순환과 악순환의 문제이기도 하다. A사는 시장에 먼저 자리잡은 행운으로 인해 돈과 시간에 관한 여유가 좀 더 있었고, B사는 당시 시점에서는 시장의 강자에 가까웠지만 경쟁 자체가 치열한 분야다 보니 늘 돈과 시간에 쫓기는 형국이었다. 여유가 있으니 관심을 좀 더 넓히고, 여유가 없으니 지금 하는 것에만 당장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크다. 하지만, 여유 중에도 특히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다. 돈과 시간은 환경에 크게 지배받지만, 마음의 여유는 비록 환경과 완전 무관하다 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조직 문화와 개별 마인드에 더 크게 의존한다.

     

    비단 IT 분야만 아니라, 전통적인 기계 산업 쪽을 봐도 마찬가지다. C사의 중역급 엔지니어에게 화석 연료 고갈 이후의 내연 기관 대책에 관해 물었다가 아주 퉁명스런 대꾸만 들었었다. '빨라 봐야 이삼십년 뒤의 일인데 그걸 지금 신경 쓸 여유가 어딨냐?' 수준의 답이었다.

    하지만, D사의 중간 관리자급 엔지니어는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화석 연료라는게 늘 고갈된다 걱정은 하면서도 신기술의 등장으로 자꾸 더 캐내고 있죠. 하지만, 화석 연료 자원 자체의 고갈 때문이 아니라 환경 문제와 그에 대비한 국가 정책의 영향으로 화석 연료 종말 시점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올 수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그걸 대비한 연구를 진행 중이에요. 한편, 아직까지는 화석 연료만큼 에너지 밀도가 큰 연료는 참 찾기 어렵습니다.'

    '화석 연료보다 에너지 밀도가 더 큰 걸로는 수소나 아예 원자력 급이 있지만 그건 취급이 어렵고, 그래서 안전 문제도 크죠. 화석 연료가 비록 고갈된다 하더라도, 그걸 합성하는 기술은 곧 등장할 겁니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거기에 에너지를 투입하여 화석 연료로 만들어내는 기술은 곧 등장할 걸요? 물론, 저희 회사가 주력하는 분야는 아닙니다만, 여하튼 두가지 가능성 모두를 보고 있어요.'

    퉁명스러웠던 C사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D사 역시 놀랍게도 아직도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의 원인은 전혀 다르다. 지적 호기심이 부족한 것을 넘어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억압하기로 업계에서 악명 높은 C사는 최하위 그룹에서 살아 남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인 것이고, D사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두 회사지만 그 셋 중에는 가장 약하기 때문에 더 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큰 차이가 있다.

    이 둘의 차이 역시 그 배경에는 지적 호기심에 대한 수준 차이가 있다.

     

    잘 나가는 조직과 도토리끼리 아웅다웅하는 조직의 차이는 그 리더나 구성원들과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잘 나가는 조직은 지적 호기심이 넘쳐 나고, 나같은 비전문가의 눈높이에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주는 능력(이건 결국 지혜다)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도토리 조직을 보면 시장에서 살아 남는 자체가 모든 능력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눈 앞의 기회나 이익만 추구할 뿐이며, 놀랍게도 공통적으로 '철학', '지적 호기심', '학문적 소양', ... 이런 말들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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