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다껌

행복이 자리하는 곳

초끄네끼 2019. 2. 12. 12:49

행복의 신의 사람의 미소를 먹고 산다. 내가 행복함을 느끼고 미소를 지으면, 행복의 신은 늘 내 곁에 머무른다. 반면, 불행의 신은 나의 고통을 먹고 산다. 내가 불행함을 느끼고 늘 불만에 차 있으면 그 자리에는 불행의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행복의 신은 내 곁에서 점점 멀어진다.

나의 부족함을 느끼고, 어떤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음을 늘 마음에 두고 사는 것과 내 조건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부족함을 메우려는 노력과, 내 불행에 대한 한탄은 다르다.

행운은 행복의 신과 함께 하며, 불운은 불행의 신과 함께 한다. 행운은 행복의 신이 내게 주는 선물이며, 불운은 불행의 신이 배설하는 찌꺼기다.

세상의 지혜를 모르는 어리석음과, 알지 못함으로 인한 헤매임은 다르다.

목표를 추구하는 노력과, 끝없는 탐욕은 다르다.

괜한 화를 내는 것과, 부당함에 대한 노여움은 다르다.


선과 악은 경계가 불분명할 때가 있으니, 그 경계를 확실히 알아가는 길이 곧 지혜의 길이다. 나의 옳음을 절대 선이라 착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며, 내 행위에 대한 결과 예측을 명확히 하지 못함은 아직 지혜를 모르기 때문이다.

내 목표에 이르기 위해 나아가는 길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줌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 부수적 피해를 외면하는 것은 탐욕일 뿐이다.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들, 특히 그 중에 내 길에 방해가 된다 생각하여 화부터 내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노릇이다. 내게 가해지는 또는 다른 많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노여움을 내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나아가서는 그런 부당함을 뜯어 고치려 애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걸어가지 않고 멈추어 있는 것은 결국 늙어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그저 죽을 날을 향해 시간의 흐름에 실려가는 어리석은 상태다.

세상에는 모든 가능성이 상존하며, 나는 거기서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면 그뿐. 아쉬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지금 여기를 즐기면 된다. 지나침은 곧 모자람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