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숙제 01 - 어쩔 수 없다. 영어는 경쟁력이다.
모 다국적 기업의 한국 지사 소속으로 일하면서 한국 내에서의 협력업체(supply chain) 후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지원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나름 그 계통에서 워낙 이름이 알려진 기업이다 보니, 많은 한국 업체들이 면담을 요청해왔다. 이 면담을 주도한 사람은 싱가폴에서 일하는 중국계 말레이지아인이었다.
그의 영어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중국식+싱가폴식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 억양을 무시하는데 그건 겉만 본 것이다. 그의 영어는 상당히 세련된 것이었다. 다만, 억양이나 발음이 우리가 익숙한 미국식과 달랐을 뿐.
여러 업체를 만나고 난 뒤, 그가 내게 따로 해준 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여럿 보인다. 그런데, 치명적인 단점이 공통적으로 보이던데, 그것은 "핵심 경쟁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시켜만 주시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로 답하는데 그것은 결국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둘째, 영어가 안 통한다. 최대한 들어주러 온 나와도 이렇듯 영어가 (말이) 안 통하는데 나중에 실제 업무가 진행되면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 같지 않다. 그나마 여기 나온 사람들은 회사를 대표해서 나름 영어도 한다고 나왔을 터인데, 실무진들은 이보다도 영어가 더 안 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결국, 이틀 간에 걸친 여러 회사와의 면담에서 협력 계약이 진행된 건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여러 종류의 기업에서 여러 일들을 하면서 우리 기업의 영어 소통 능력이 예상 외로 떨어짐을 절감하고 있다. 일상이든 일이든 말이 통해야 그 다음이 진행되는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데 일이 될 수는 없는 법. 우리는 전문 분야에서 나름의 기술을 갈고 닦지만 정작 말이 안 통해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직원 교육 투자가 약한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의 미팅에서도 흔히 보는 일들이다. 경력이 상당하고 해외 경험도 많다고 소개받은 부장급 고참들도 영어로 하는 회의에서는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것이 흔히 보는 장면들이다. 이래서는 경쟁력이 생길 수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본 여러 장면들 중 공통적인 모습들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회의 시간 내내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는 질문 자체가 거의 안 나온다. (몇년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현직 시절 방한했을 때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질문 있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은 유명한 장면도 있다.)
회의에 동석하고 있는 내가 봤을 때는 상대방의 영어 내용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음이 분명한데도 되묻는 경우 자체를 거의 못 봤다. 그러고 나서 회의가 끝나고 나면, 우리끼리 서로 조각을 맞춘다. 그러면 당연히 업무 방향은 목적지를 잃고 엉뚱한 곳을 헤맬 수밖에 없다. 내가 못 알아들은 것은 결코 실례가 아니며, 상대의 영어가 모국어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상대는 이를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해못한 것은 그대로 되물어야 업무 진행 의지가 있다고 보이는 것이다. 못 알아 들은 것이 얼굴에 뻔히 나타나는데 (예의 그 '으흠...'하는 추임새. 못 알아 들었을 경우에 오히려 잘 나오는 추임새) 끝까지 되묻지를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아주 커졌고, 급기야 광주 항쟁에서 만들어졌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홍콩 시위에서 우리말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K-pop 열풍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말은 아직까지 사업의 영역에서는 주류 언어가 아니다. 현재 세계의 주류 언어는 영어다. 어쩔 수 없다. 한 때는 영국이, 그리고 영국이 주춤하는 사이 미국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영어는 사실상의 세계 공용어가 되어 가고 있다.
내가 익숙한 말이 아니라서 억울하지만 우리는 영어를 익혀야 한다. 내가 아프다고, 내가 기쁘다고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나의 상태를 알 도리가 없다. 상대가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을 할 때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면 숟가락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숭늉 떠다주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 우리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는 방법은 관점 또는 선입견만 몇 개 바꾸면 의외로 쉽다. 그 첫번째는 영어 이름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 다음에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