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감각 그리고 측정 단위에 관한 단상
2/3와 3/5 중에 어느 것이 더 큰지 질문을 받았을 때 재빨리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수에 관한 감각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질문을 처음 봤을 때 머릿속으로 동그라미를 그렸었고 얼른 대답을 못했다. 두 개가 비슷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림 상상으로 실패한 다음에는 통분을 시도했다. 2/3 = 10/15, 그리고 3/5 = 9/15. 아, 그러니까 2/3가 3/5 보다 크다! 나는 숫자에 약하다.
그런데, 수에 관한 감각이 좋은 사람들은 대번에 2/3 = 0.666..., 그리고 3/5 = 0.6을 바로 떠올리며 대답했을 것이다.
Love and Math라는, 구소련 출신 유대인 수학자의 책에 보면 이 두 분수의 차이를 술꾼들은 바로 알아차린다는 유머가 나온다. 즉, 술꾼들은 분수로서는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질문을 살짝 바꾸어서, 세 명이 술 두 병 마시는게 좋은지, 아니면 다섯 명이 술 세 병 마시는게 좋은지 물으면 감각적으로 빨리 대답할 줄 안다는 유머다. 똑같은 질문이라도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던질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은 유머이기도 하다.
나는 중학생 시절에 속도의 공식을 이해하지 못해 많이 헤맸었다. 속도가 거리 나누기 시간인지, 시간 나누기 거리인지가 그렇게나 헷갈렸던 것이다. 조금만 차근히 이해하려 했으면 됐을 것을.
같은 시간 동안 더 멀리 가는 것이 더 빠른 것이다. 그러니까속도는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는 것일 수밖에.
진시황은 도량형을 통일했다는 표현을 학창 시절에는 그저 달달 외우기만 해서 그 의미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진시황이 안타까워할 사건이 우주개발의 역사에 등장하고 말았다. 미국과 유럽이 공동으로 (내 기억에 토성) 탐사선을 개발했는데 두 대륙의 도량형이 다르다 보니 소프트웨어에도 서로 다른 거리 단위가 쓰였고, 이를 이해할리 만무한 컴퓨터는 그 비싼 탐사선을 엉뚱한 것으로 날려 보내서 결국 잃어버렸다는 그 유명한 사건.
오늘날 대다수 국가들이 미터, 킬로그램으로 대표되는 국제 표준단위를 씀에 반해 미국은 아직도 파운드나 마일 등과 같은 (영국도 이제는 안 쓰는) 영국식 단위를 쓰고 있다. 미국 역시 이것에 대한 불편을 느껴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국제 표준 단위로의 국가적 전환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그 비용이 너무 커서 포기했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측정 기본 단위는 질량, 거리, 그리고 시간 단 세 가지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이 세 가지 기본 단위 외에도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압력, 에너지, 온도 등등이 더 있다.
시간의 경우는 하루의 길이와 일년의 길이가 지구 위 모든 곳에서 다 똑같다. (위도나 계절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시간의 단위로서는 똑같다.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 돌고 일년에 한번 태양 둘레를 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게나 길이는 그 기준이 되는 단위의 양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 달랐다. 이 때문에 대명천지 우주 시대에 그 비싼 탐사선을 잃어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지구적 규모로 의사소통이 진행되면서 도량형은 나름 객관적인 기준을 갖추게 된다. 특히 길이가 그렇다. 미터의 경우 지구 자오선의 1/4을 1만 킬로미터로 규정하게 되면서 명확해졌다. 그래서 지구 둘레는 외우기가 쉽다. 지구 둘레의 1/4이 10,000km이므로 지구 둘레는 간단히 40,000km인 것이다. 우리말로 해리라고 불리는 nautical mile 역시 미터 정의와 사실상 똑같은 과학적 방법으로 규정된다. 지구 한 바퀴를 360도 각도로 두고 1도의 1/60 즉, 1분을 1해리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미터와 해리 사이의 관계를 금방 계산해낼 수 있다.
40,000km = 360(도) * 60(분) 해리
나머지 길이 정의는 그냥 외우거나 표를 참조하는 수밖에 없다. 킬로미터와 해리처럼 어떤 과학적 또는 공학적 기준이 아닌 그냥 각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따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피트, 마일, 리 등이 다 그렇다.
온도의 대표적 단위는 섭씨와 화씨다. 둘 다 나름 과학적 근거는 있다. 섭씨의 경우 물이 어는 온도를 0, 물이 끓는 온도를 100으로 쳤다. 화씨의 경우 소금물이 어는 온도를 0, 사람의 체온을 100으로 쳤다. 섭씨와 화씨의 경우 0으로 잡는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 변환식은 단순히 비례관계가 아닌 더하거나 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좀 짜증난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절대온도라는 개념이 더해졌다. 즉, 물리학적으로 더 이상 차갑게 만들 수 없는 궁극의 차가움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공학도들은 온갖 변환식에 익숙해야 한다. 심지어 대단히 과학적이라 여겨지는 현대 물리학에서도 다소 경험적인 단위가 등장한 적이 있다. 수소 원자의 지름을 옹스트롬으로 정의했던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물이 끓는 온도라 할 때, 정확하게 어떤 기압에서? 라는 추가 조건이 필요했듯이, 옹스트롬도 마찬가지로 정확이 어떤 에너지 상태의 수소 원자 지름인가라는 추가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옹스트롬 단위를 더 이상 쓰지 않고 대신 나노미터로 표현한다.
살다 보면 남의 나라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듯이, 공학을 하다 보면 똑같은 물리량이지만 기본 단위가 달라서 숫자 표현이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고 자칫하면 실수가 스며들기 쉽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하지만 2/3과 3/5의 차이를 술꾼들의 감각으로 표현하는 재미를 가지고 온갖 단위 표현을 접하면 단위들 사이의 골치 아픔과 지겨움을 나름 잘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